- 투디갤 - 괴담
- 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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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3 00:38
따르릉.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휴대폰 알람 소리가 울리자마자 노인이 한 말이었다.
“아직 묻고 싶은 게 많은데요.”
여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미약하게 항의했으나 노인은 단호하게 고개저었다.
“그만큼 시간도 많아, 다음에 다시 질문하시오.”
축객령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서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수확이 없진 않았다는 게 위로받을만한 점이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무슨 의미일까. 무엇에 대한 말일까.
그녀는 이 말을 수첩에 필기한 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이 이렇게 되어버린 후로 생긴 습관 중 하나였다. 노인과의 문답이 끝난 후에는 항상 하늘을 보았다.
무언가 달라지길 바라며.
—원래대로 돌아오길 바라며.
하늘은 흐렸다. 먹구름으로 가득 찬 하늘이다.
회색 하늘 사이로 비춰지는 정광(晶光). 낮과 밤이 교차하지 않는 하늘.
바람 한 점 불지 않으며, 일몰과 일출의 규칙은 망가졌고, 생명의 맥동 역시 굳었다.
그래, 쉽게 말하자면, 시간이 멈췄다. 노인과 그녀만 제외하고.
* * *
“내가 한 짓입니다.”
시간이 멈춘 이후, 그녀를 찾아온 노인이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시간을 주겠습니다. 내게 질문하고, 인과(因果)에 대한 답변을 얻으세요.”
처음에는 화를 내고, 이후에는 애걸복걸하고, 결국에는 체념했다.
그녀는 노인이 요구하는 일종의 선문답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노인은 이 문답에서 딱 하나의 규칙을 내세웠다.
직설적인 질문은 불가하다.
왜, 또는 어떻게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냐는 것과 같은 질문은 불가했다.
“그럼 어떤 식으로 물어야 합니까?”
“하늘에 먹구름이 걷히지 않는군요.”
요지에서 벗어난듯한 노인의 말에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야 당신이…….”
“바로 그겁니다. 똑같이 내게 말해보세요.”
“……하늘에 먹구름이 걷히지 않는군요.”
“제가 세상의 시간을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이해가 갈 것 같았다. 아주 조금.
그렇게 수집된 정보를 수첩에 정리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알게 된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로 그녀의 휴대전화는 작동한다.
그녀의 휴대전화는 유일무이하게 작동하는 기계이다. 현재 확인 된 기능은 시계와 타이머 기능이다.
사실상 그 기능만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했다. 노인과 그녀의 문답은 그 휴대전화를 기준으로 하루 다섯 시간.
시간을 멈춘 시기는 20XX년 XX월 XX일이었으나, 지켜본 바에 따르면 그녀의 휴대전화 속에서는 날짜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덕분에 대충 낮과 밤을 가늠하여 잠을 청하거나 휴대전화 속 시계를 기준으로 노인과 문답을 주고받을 시간을 정하는 등의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아마 이것은 노인이 한 일종의 배려일 것이다.
둘째, 노인이 시간을 멈춘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무엇에 대한 두려움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이를 위해 질문을 좀 더 고심할 필요가 있었다.
이 정보를 얻기 위해 일흔 한 번 질문했다.
셋째, 그녀는 딱히 특출난 능력이나 필요에 의해 노인에게 선택받은 것이 아니다.
그저 노인과 같은 언어를 공유하며, 일정 수준 이상의 지적 능력 역시 보유한 무작위적 선발자에 불과했다.
이하는 세 번째 정보를 얻게 된 대화 내역이다.
“어릴 땐 제가 세상의 주인공인줄 알았어요.”
“나이를 먹으니 그게 아닌 것 같았나?”
“훨씬 빛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요. 적어도 저는 제가 얼마나 반짝이는지를 알았거든요.”
“나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저…… 각각의 사람들이 모두 다른 색으로 빛난다고 여기죠. 밝기는 다를지언정, 색 역시 다르다고.”
“당신이 ‘지금’ 이루어낸 일들로 보면, 가장 밝고 특출난 빛인 것 같네요.”
“그건 부정하지 않겠소. 내 입장에서 볼 때는 모두가 그저 다 같은 촛불에 불과해.”
“저 역시도 말인가요?”
“조금 다르지. 나랑 말 몇마디 주고받을 수 있는 촛불 아니겠나. 나름 특별하거든.”
마지막으로 얻은 정보는 방금의 그것이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거의 네 자릿수에 가까운 질문이 오갔으며 본 목적은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법’에 관해서였다.
하지만 실마리를 잡을 수 없었고, 그와는 별개로 우연히 얻게 된 대답이었다.
무슨 뜻인지는 곧 알 수 있었다.
직설적인 문답이 아니라, 이렇게 복잡하고 답답한 방식의 문답을 고수하는 이유.
—누군가가 이 문답을 듣고 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없고, 우리를 볼 수도 없지만 분명 듣고 있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품을 뒤적이자 담뱃갑이 손에 잡혔다.
라이터를 신경질적으로 틱틱거렸다. 불은 솟아오르지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담배만 입에 물고 질겅거렸다.
막막함이 끊임없이 몰려온다.
이유를 알아야 한다. 해결책을 알아야 한다.
가장 핵심에는 여전히 접근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평균보다 조금은 나은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았다.
‘늙는 게 두려운 건가?’
아니었다. 그는 분명 지금도 늙고 있었다. 그와 그녀의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또한 그 노인의 능력이었다면, 어쩌면 불로불사도 허황된 꿈이 아니지 않았을까?
무려 시간을 멈춘 것이다.
그것도 예외를 정해서. 기가 막힌 위업이고, 파괴적인 처사였다.
그런 노인이 두려워 할만한 것은 무엇인가?
네 번째 정보와의 연관점이 존재하는가?
……훨씬 꼼꼼하게 생각하자.
왜, 굳이, 먹구름이 가득한 시기에 시간을 멈추어 놓았는가.
해가 두려운가?
그렇다면 어째서 밤이 아닌거지?
밤이 두려운가?
달과 별을 두려워하는가?
우리를 감시하는 자들은 어디에 있지?
머리의 한 부분이 꽉 막힌 느낌이었다. 딱 그것만 뚫으면 될텐데…….
두 정보 사이의 연관점....
“...감시자들이 두려운가?”
볼 수 없고 보이지 않지만, 전부 듣고 있는 자들. 그들이 두려운건가?
왜 두렵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감시자들은 ‘어디서’ 듣고있는가.
실마리를 잡은 것 같았다.
* * *
“오늘도 시작해볼까?”
노인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약간의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는 쇠약해지고 있었다.
“내가 어제 했던 말 기억할걸세. 시간이 많다고.”
“……기억합니다.”
“이젠 아닌 것 같군. 시간이 얼마 없어.”
시간이 멈춘 세상에서 시간의 많고 적음을 논한다. 역설적이었으나 그녀는 그것이 틀린 말이 아님을 직감했다.
“나에게도, 자네에게도. 특히 나에게 더 와닿는 말이지만 말이야.”
무슨 의미일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인가. 그가 죽는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녀는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타이머를 맞추었다. 지금부터 다섯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끌 생각도 없었다.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어렸을 때.”
“바로 시작하는건가? 좋아, 좋아.”
“……아주 어렸을 때, 연극을 한 적이 있습니다.”
“…….”
노인의 표정을 살피며 계속 말했다.
“막 뒤에서 준비를 하며, 참 설레었죠.”
“근데 막이 걷히고 연극이 시작되자, 어땠는지 아십니까?”
“무서웠죠.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이 내 행동을 주시한다는 사실. 그 냉엄한 시선들로부터 오는 공포.”
“설레었던 마음, 자랑스럽고 북받치는 마음은 일소(一掃)되었죠. 그리고 곧바로 울음을 터뜨리며 다시 장막 너머로 도망갔어요.”
“너무 어렸을 적이라 무대공포증으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악몽으로서 제 꿈에 등장합니다.”
아주 오래된 기억이지만, 잊혀지지 않는다.
관객들은 그녀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그녀는 관객 한 명 한 명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기묘한 무지(無知)는 더 깊은 무지를 불러온다.
정체와 연원을 전혀 알 수 없는 시선이 무수히 자신에게 꽂힌다는 건,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슈퍼스타들, 위대한 배우들과 엔터테이너들. 무대에 서는 것이 즐거우며 사람들의 시선을 세례라 여기는 부류들.
그들이 악의 섞인 관심에 스스로 삶을 끝낼 때, 그녀는 그들이 자신과 다를 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노인이 웃으며 박수를 쳤다.
정답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췄군.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이야기도 다 듣고 있는 겁니까?”
“다 들리지. 다 들려.”
한숨을 쉰 노인이 창밖을 보았다.
“트루먼 쇼라고.”
“예?”
“아주 오래된 영화야.”
제목과 내용을 들어본 적은 있었다.
“우리는 그와 다르게 도망칠 곳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녀는 무심코 노인을 따라 시선을 창밖으로 향했다.
하늘이었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다고 했지? 나는 그래서 밤하늘이 싫었어.”
시선과 밤하늘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가.
그녀는 입을 열려다가 눈을 크게 떴다.
이내 충격받은 듯 비틀거렸다.
“별이 수놓인 하늘이 참 아름답다고? 참나.”
속에서 올라오는 신물을 꾸역꾸역 집어삼키다가 이내 엎드려 토했다.
“설마...”
쩌억, 하고 빙판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것보다는 조금 더 청아한 소리.
쩌억, 쩌억, 쩌억.
무심코 하늘을 다시 바라보았고, 곧 거대한 균열을 발견할 수 있었다.
“태양은 글쎄… 혹시나 해서 가려 놓았지.”
마치 하늘이 깨진 유리창과도 같은 모습.
그 깨진 틈 사이로 어둠이 보였다.
우리가 하루의 절반 동안 보아왔던 어둠.
그리고 형형히 빛나는 별들.
아니, 시선들.
균열이 점점 커진다.
“자네는 어떡하고 싶나. 저것들의 인내심이 한계인 것 같은데.”
“…그 후에, 부모님이 울고불며 떼쓰는 절 데리고 뮤지컬을 보러 갔었죠.”
입을 옷으로 대충 닦은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때 깨달았어요. 공연은 막이 내릴 때까지라는 사실을, 이야기가 끝나면 기꺼이 관객들이 박수쳐 줄 것이라는 사실을요.”
“하지만 저들은 이야기가 끝나길 바라지 않아. 그건 우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고.”
균열의 숫자가 점차 늘어난다.
이제는 갈라지는 소리가 아닌 유리가 완전히 박살나는 소리가 들려온다.
쨍그랑, 쨍그랑.
구멍의 크기가 커지고, 훨씬 많은 ‘시선’이 우리를 향한다.
밤이 오고 있었다.
아직 시간은 멈추어져 있지만, 만약 이대로 완전한 밤이 찾아온다면 더욱 심각해진다.
영원한 밤이 계속된다. 영원한 공연이 계속된다.
방법이 없는가?
영원히 저들의 구경거리로 살아야 하는가?
저들이 우리에게 박수를 치게 만들어야 한다.
막은 언젠가 내려간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어떻게?
“……이제 우리가 보이기까지 하는 거죠?”
“그래. 다 보이고, 다 들리는거야.”
노인이 가쁘게 숨을 쉬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서둘러 선택해야 해.”
시간을 멈추어 놓을텐가, 다시 흘러가게 만들텐가.
관객들에게 결말을 알려주어야 하나?
최악의 공연으로 야유가 나오게 만들어야 하나?
도대체,
방법을 알 수가 없다.
관객, 공연자.
막.
그리고 시선.
시선?
결말이 아니라, 또 다른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바로 그거였다!
“당장 시간이 다시 흘러야 해요. 지금 당장!”
“뭐? 하지만….”
“어서!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요!”
쨍그랑 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세상에서, 풀내음이 나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고, 자동차의 배기음이 울리고, 새와 곤충소리가 들린다.
시계의 초침과 분침이 분주히 움직이며 째깍거리는 소리를 낸다.
시간이 흐른다.
사람들이 움직인다.
그래, 사람들이 움직인다.
“저, 저게 뭐야?”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산산히 조각난 하늘을 올려다본다.
모든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본다.
깨져나가는 하늘이 멎었다.
이제 저것들도 알게 되겠지.
저들은 내려간 막을 향해 박수칠 수 있는 모범적인 관객이 아니다.
그렇다면 박수따위 받을 필요 없다.
그저 우리가 느낀 것과 똑같은 것을 느끼게 해주면 되었다.
수십억 명의 시선으로부터, 공포를 느껴라.
그리고 부끄러움도.
“하늘이….”
다시 닫히고 있었다.
암흑 속 ‘별’들이 자취를 감추고 낮이 돌아온다.
노인이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딘가 편안해 보였다.
“하지만…… 밤은 다시…….”
“밤은 와도, 저들은 안 올걸요?”
“그거면, 충, 분한…….”
밖에서는 여전히 아까 발생한 사태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 서재 안에서는 아니었다.
그녀는 조용해진 노인의 두 눈을 감겨주며 생각했다.
박수 칠 자격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야기의 끝을 본 자들에게 있었다.
저것들도 아니었고, 그녀도 아니었고, 노인도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너희는 자격이 있는가.
다를 바 없는 자들아.
Acta est fabula, plaudite!
이야기는 끝났다, 박수를 쳐라!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휴대폰 알람 소리가 울리자마자 노인이 한 말이었다.
“아직 묻고 싶은 게 많은데요.”
여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미약하게 항의했으나 노인은 단호하게 고개저었다.
“그만큼 시간도 많아, 다음에 다시 질문하시오.”
축객령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서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수확이 없진 않았다는 게 위로받을만한 점이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무슨 의미일까. 무엇에 대한 말일까.
그녀는 이 말을 수첩에 필기한 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이 이렇게 되어버린 후로 생긴 습관 중 하나였다. 노인과의 문답이 끝난 후에는 항상 하늘을 보았다.
무언가 달라지길 바라며.
—원래대로 돌아오길 바라며.
하늘은 흐렸다. 먹구름으로 가득 찬 하늘이다.
회색 하늘 사이로 비춰지는 정광(晶光). 낮과 밤이 교차하지 않는 하늘.
바람 한 점 불지 않으며, 일몰과 일출의 규칙은 망가졌고, 생명의 맥동 역시 굳었다.
그래, 쉽게 말하자면, 시간이 멈췄다. 노인과 그녀만 제외하고.
* * *
“내가 한 짓입니다.”
시간이 멈춘 이후, 그녀를 찾아온 노인이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시간을 주겠습니다. 내게 질문하고, 인과(因果)에 대한 답변을 얻으세요.”
처음에는 화를 내고, 이후에는 애걸복걸하고, 결국에는 체념했다.
그녀는 노인이 요구하는 일종의 선문답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노인은 이 문답에서 딱 하나의 규칙을 내세웠다.
직설적인 질문은 불가하다.
왜, 또는 어떻게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냐는 것과 같은 질문은 불가했다.
“그럼 어떤 식으로 물어야 합니까?”
“하늘에 먹구름이 걷히지 않는군요.”
요지에서 벗어난듯한 노인의 말에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야 당신이…….”
“바로 그겁니다. 똑같이 내게 말해보세요.”
“……하늘에 먹구름이 걷히지 않는군요.”
“제가 세상의 시간을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이해가 갈 것 같았다. 아주 조금.
그렇게 수집된 정보를 수첩에 정리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알게 된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로 그녀의 휴대전화는 작동한다.
그녀의 휴대전화는 유일무이하게 작동하는 기계이다. 현재 확인 된 기능은 시계와 타이머 기능이다.
사실상 그 기능만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했다. 노인과 그녀의 문답은 그 휴대전화를 기준으로 하루 다섯 시간.
시간을 멈춘 시기는 20XX년 XX월 XX일이었으나, 지켜본 바에 따르면 그녀의 휴대전화 속에서는 날짜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덕분에 대충 낮과 밤을 가늠하여 잠을 청하거나 휴대전화 속 시계를 기준으로 노인과 문답을 주고받을 시간을 정하는 등의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아마 이것은 노인이 한 일종의 배려일 것이다.
둘째, 노인이 시간을 멈춘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무엇에 대한 두려움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이를 위해 질문을 좀 더 고심할 필요가 있었다.
이 정보를 얻기 위해 일흔 한 번 질문했다.
셋째, 그녀는 딱히 특출난 능력이나 필요에 의해 노인에게 선택받은 것이 아니다.
그저 노인과 같은 언어를 공유하며, 일정 수준 이상의 지적 능력 역시 보유한 무작위적 선발자에 불과했다.
이하는 세 번째 정보를 얻게 된 대화 내역이다.
“어릴 땐 제가 세상의 주인공인줄 알았어요.”
“나이를 먹으니 그게 아닌 것 같았나?”
“훨씬 빛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요. 적어도 저는 제가 얼마나 반짝이는지를 알았거든요.”
“나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저…… 각각의 사람들이 모두 다른 색으로 빛난다고 여기죠. 밝기는 다를지언정, 색 역시 다르다고.”
“당신이 ‘지금’ 이루어낸 일들로 보면, 가장 밝고 특출난 빛인 것 같네요.”
“그건 부정하지 않겠소. 내 입장에서 볼 때는 모두가 그저 다 같은 촛불에 불과해.”
“저 역시도 말인가요?”
“조금 다르지. 나랑 말 몇마디 주고받을 수 있는 촛불 아니겠나. 나름 특별하거든.”
마지막으로 얻은 정보는 방금의 그것이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거의 네 자릿수에 가까운 질문이 오갔으며 본 목적은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법’에 관해서였다.
하지만 실마리를 잡을 수 없었고, 그와는 별개로 우연히 얻게 된 대답이었다.
무슨 뜻인지는 곧 알 수 있었다.
직설적인 문답이 아니라, 이렇게 복잡하고 답답한 방식의 문답을 고수하는 이유.
—누군가가 이 문답을 듣고 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없고, 우리를 볼 수도 없지만 분명 듣고 있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품을 뒤적이자 담뱃갑이 손에 잡혔다.
라이터를 신경질적으로 틱틱거렸다. 불은 솟아오르지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담배만 입에 물고 질겅거렸다.
막막함이 끊임없이 몰려온다.
이유를 알아야 한다. 해결책을 알아야 한다.
가장 핵심에는 여전히 접근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평균보다 조금은 나은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았다.
‘늙는 게 두려운 건가?’
아니었다. 그는 분명 지금도 늙고 있었다. 그와 그녀의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또한 그 노인의 능력이었다면, 어쩌면 불로불사도 허황된 꿈이 아니지 않았을까?
무려 시간을 멈춘 것이다.
그것도 예외를 정해서. 기가 막힌 위업이고, 파괴적인 처사였다.
그런 노인이 두려워 할만한 것은 무엇인가?
네 번째 정보와의 연관점이 존재하는가?
……훨씬 꼼꼼하게 생각하자.
왜, 굳이, 먹구름이 가득한 시기에 시간을 멈추어 놓았는가.
해가 두려운가?
그렇다면 어째서 밤이 아닌거지?
밤이 두려운가?
달과 별을 두려워하는가?
우리를 감시하는 자들은 어디에 있지?
머리의 한 부분이 꽉 막힌 느낌이었다. 딱 그것만 뚫으면 될텐데…….
두 정보 사이의 연관점....
“...감시자들이 두려운가?”
볼 수 없고 보이지 않지만, 전부 듣고 있는 자들. 그들이 두려운건가?
왜 두렵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감시자들은 ‘어디서’ 듣고있는가.
실마리를 잡은 것 같았다.
* * *
“오늘도 시작해볼까?”
노인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약간의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는 쇠약해지고 있었다.
“내가 어제 했던 말 기억할걸세. 시간이 많다고.”
“……기억합니다.”
“이젠 아닌 것 같군. 시간이 얼마 없어.”
시간이 멈춘 세상에서 시간의 많고 적음을 논한다. 역설적이었으나 그녀는 그것이 틀린 말이 아님을 직감했다.
“나에게도, 자네에게도. 특히 나에게 더 와닿는 말이지만 말이야.”
무슨 의미일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인가. 그가 죽는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녀는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타이머를 맞추었다. 지금부터 다섯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끌 생각도 없었다.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어렸을 때.”
“바로 시작하는건가? 좋아, 좋아.”
“……아주 어렸을 때, 연극을 한 적이 있습니다.”
“…….”
노인의 표정을 살피며 계속 말했다.
“막 뒤에서 준비를 하며, 참 설레었죠.”
“근데 막이 걷히고 연극이 시작되자, 어땠는지 아십니까?”
“무서웠죠.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이 내 행동을 주시한다는 사실. 그 냉엄한 시선들로부터 오는 공포.”
“설레었던 마음, 자랑스럽고 북받치는 마음은 일소(一掃)되었죠. 그리고 곧바로 울음을 터뜨리며 다시 장막 너머로 도망갔어요.”
“너무 어렸을 적이라 무대공포증으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악몽으로서 제 꿈에 등장합니다.”
아주 오래된 기억이지만, 잊혀지지 않는다.
관객들은 그녀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그녀는 관객 한 명 한 명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기묘한 무지(無知)는 더 깊은 무지를 불러온다.
정체와 연원을 전혀 알 수 없는 시선이 무수히 자신에게 꽂힌다는 건,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슈퍼스타들, 위대한 배우들과 엔터테이너들. 무대에 서는 것이 즐거우며 사람들의 시선을 세례라 여기는 부류들.
그들이 악의 섞인 관심에 스스로 삶을 끝낼 때, 그녀는 그들이 자신과 다를 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노인이 웃으며 박수를 쳤다.
정답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췄군.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이야기도 다 듣고 있는 겁니까?”
“다 들리지. 다 들려.”
한숨을 쉰 노인이 창밖을 보았다.
“트루먼 쇼라고.”
“예?”
“아주 오래된 영화야.”
제목과 내용을 들어본 적은 있었다.
“우리는 그와 다르게 도망칠 곳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녀는 무심코 노인을 따라 시선을 창밖으로 향했다.
하늘이었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다고 했지? 나는 그래서 밤하늘이 싫었어.”
시선과 밤하늘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가.
그녀는 입을 열려다가 눈을 크게 떴다.
이내 충격받은 듯 비틀거렸다.
“별이 수놓인 하늘이 참 아름답다고? 참나.”
속에서 올라오는 신물을 꾸역꾸역 집어삼키다가 이내 엎드려 토했다.
“설마...”
쩌억, 하고 빙판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것보다는 조금 더 청아한 소리.
쩌억, 쩌억, 쩌억.
무심코 하늘을 다시 바라보았고, 곧 거대한 균열을 발견할 수 있었다.
“태양은 글쎄… 혹시나 해서 가려 놓았지.”
마치 하늘이 깨진 유리창과도 같은 모습.
그 깨진 틈 사이로 어둠이 보였다.
우리가 하루의 절반 동안 보아왔던 어둠.
그리고 형형히 빛나는 별들.
아니, 시선들.
균열이 점점 커진다.
“자네는 어떡하고 싶나. 저것들의 인내심이 한계인 것 같은데.”
“…그 후에, 부모님이 울고불며 떼쓰는 절 데리고 뮤지컬을 보러 갔었죠.”
입을 옷으로 대충 닦은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때 깨달았어요. 공연은 막이 내릴 때까지라는 사실을, 이야기가 끝나면 기꺼이 관객들이 박수쳐 줄 것이라는 사실을요.”
“하지만 저들은 이야기가 끝나길 바라지 않아. 그건 우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고.”
균열의 숫자가 점차 늘어난다.
이제는 갈라지는 소리가 아닌 유리가 완전히 박살나는 소리가 들려온다.
쨍그랑, 쨍그랑.
구멍의 크기가 커지고, 훨씬 많은 ‘시선’이 우리를 향한다.
밤이 오고 있었다.
아직 시간은 멈추어져 있지만, 만약 이대로 완전한 밤이 찾아온다면 더욱 심각해진다.
영원한 밤이 계속된다. 영원한 공연이 계속된다.
방법이 없는가?
영원히 저들의 구경거리로 살아야 하는가?
저들이 우리에게 박수를 치게 만들어야 한다.
막은 언젠가 내려간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어떻게?
“……이제 우리가 보이기까지 하는 거죠?”
“그래. 다 보이고, 다 들리는거야.”
노인이 가쁘게 숨을 쉬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서둘러 선택해야 해.”
시간을 멈추어 놓을텐가, 다시 흘러가게 만들텐가.
관객들에게 결말을 알려주어야 하나?
최악의 공연으로 야유가 나오게 만들어야 하나?
도대체,
방법을 알 수가 없다.
관객, 공연자.
막.
그리고 시선.
시선?
결말이 아니라, 또 다른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바로 그거였다!
“당장 시간이 다시 흘러야 해요. 지금 당장!”
“뭐? 하지만….”
“어서!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요!”
쨍그랑 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세상에서, 풀내음이 나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고, 자동차의 배기음이 울리고, 새와 곤충소리가 들린다.
시계의 초침과 분침이 분주히 움직이며 째깍거리는 소리를 낸다.
시간이 흐른다.
사람들이 움직인다.
그래, 사람들이 움직인다.
“저, 저게 뭐야?”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산산히 조각난 하늘을 올려다본다.
모든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본다.
깨져나가는 하늘이 멎었다.
이제 저것들도 알게 되겠지.
저들은 내려간 막을 향해 박수칠 수 있는 모범적인 관객이 아니다.
그렇다면 박수따위 받을 필요 없다.
그저 우리가 느낀 것과 똑같은 것을 느끼게 해주면 되었다.
수십억 명의 시선으로부터, 공포를 느껴라.
그리고 부끄러움도.
“하늘이….”
다시 닫히고 있었다.
암흑 속 ‘별’들이 자취를 감추고 낮이 돌아온다.
노인이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딘가 편안해 보였다.
“하지만…… 밤은 다시…….”
“밤은 와도, 저들은 안 올걸요?”
“그거면, 충, 분한…….”
밖에서는 여전히 아까 발생한 사태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 서재 안에서는 아니었다.
그녀는 조용해진 노인의 두 눈을 감겨주며 생각했다.
박수 칠 자격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야기의 끝을 본 자들에게 있었다.
저것들도 아니었고, 그녀도 아니었고, 노인도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너희는 자격이 있는가.
다를 바 없는 자들아.
Acta est fabula, plaudite!
이야기는 끝났다, 박수를 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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