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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7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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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잘 가세요.”



모두가 흐느꼈다. 우치하 사스케만이 붉어진 눈가를 필사적으로 숨긴 채, 오래 전 누군가가 불태웠을 땅의 자국을 응시했을 뿐이었다.



그는 평생을 좋은 제자가 되지 못했다. 그의 조언을 무시한 채 마을을 탈주했고, 그를 죽이려했고, 심지어 그를 스승이라고 부른 적도 없었다. 그는 약해진 불길에 다시 한 번 불의 인을 맺었다. 울음인지, 애통함인지 그가 구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올라올 것 같은 구역감인지 모를 것을 간신히 억누른 채, 화염을 뱉으며 생각했다. 이 말도 안되는 유언을 들어준 것으로 그동안의 빚은 다 갚은 것이라고.



그 날은 하타케 카카시가 죽은지 이틀이 지난 후였다.





4.

나라가(家)의 당주이자 7대 호카게의 보좌관 나라 시카마루는 얼굴을 가로질러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생각하는 것 빼곤 모든 것을 귀찮아하는 그였기에, 움직이는 것을 넘어 뙤약볕에 한참을 헤맨 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다시 없을 일이었다.



“찾았다.”



유언이 있었다. 유례없는 전쟁을 끝낸 영웅 중 한 명이자, 그 전쟁의 주범의 숨을 직접 끊은 처형자이며, 무(無)의 상태에서 지금의 나뭇잎을 만들어낸 개혁가의 유언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차마 이루어내지 못한 꿈이 아니었고, 그리 길지 않은 본인의 삶에 대한 미련도 아니었으며, 자신이 일궈낸 마을과 그 구성원에 대한 당부의 말도 아니었다.



‘오비토를 태운 곳에서 나도 태워줘.’



영웅이나 처형자, 개혁가의 유언치고는 허무맹랑한 말이었다. 물론 인간에게는 자신의 끝을 본인이 직접 결정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시카마루가 기억하는 망자(亡子)는 자신의 끝의 시기와 방법,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어느 하나 결정권을 갖지 못했다. 그렇기에 살덩어리 뿐인 자신의 몸뚱아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결정하고 싶은 욕망을 이해했다.



시카마루는 어쩌면 몇 년 전 한참동안 화염이 타올랐을 곳을 응시했다. 누군가의 시신을 태웠고, 또 누군가의 시신을 태울 그곳. 지긋지긋한 뫼비우스의 띠를 끊은 곳이자 그 마지막 흔적을 역사로 만들 곳. 시카마루는 그곳에 굴러다니는 돌맹이를 치우고 무성한 풀을 뽑았다. 적어도 이곳은 초라해서는 안됐다.



시카마루는 어디선가 국장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굽힌 허리를 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 날은 하타케 카카시가 죽은 지 하루가 지난 후였다.







3.

“닌자등록번호 009720...”



사망선고는 이어지지 못했다. 스승의 사망선고를 내려야 하는 상황에 탄식하며 우즈마키 나루토는 힘겨운 손짓으로 병실 밖의 의료닌자를 불렀다. 그 또한 침통한 표정으로 다가와 조용히 선고를 읊었다. 흰 천이 망자의 얼굴로 올라가자 하루노 사쿠라는 그제서야 무너지며 오열을 했다. 나루토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위로를 하려다, 침대 밖으로 빠져나온 마르고 흰 손을 보곤 울음을 내뱉었다. 더 이상 저 손으로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지친 어깨를 두드려주던 선생은 없는 것이었다.



시카마루는 그 모습에 차라리 고개를 돌렸다. 국장의 준비, 전(前) 암부이자 호카게의 시체 처리, 타마을에 선대 호카게의 죽음을 알리는 방법, 국장을 방문할 외부인사 접대, 제 몸을 감는 쇠사슬처럼 생각들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기만 했다. 그리고 생각의 종착지는 유언장이었다. 제 재산을 어떻게 하든, 자신의 사후를 어떤 식으로 처리하든 여의치 않는 사람이었지만 어느 순간 단 하나의 유언이 생겨났더랬다. 시카마루는 그 시점이 어느 겨울 아침, 새벽에 아주 잠깐 소나기가 내린 날, 그가 유난히 지쳐보이던 날이라고 기억했다.



“나루토.”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나루토는 붕대를 감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시카마루를 응시했다. 시카마루는 침대 옆 협탁 서랍에 있는 종이를 꺼내들어 나루토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유언장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시카마루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집은 이미 정리할 것 없이 깨끗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유언장을 찾느라 수고스럽게 하지 않는 것, 자신의 집을 치우느라 사람들을 고생시키지 않는 것. 그것이 그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이었다.



시카마루는 남겨진 자들에게 대한 위로나 당부의 말 없이, 자신의 시체를 미련없이 태워버리라는 유언장이 줄 수 있는 감정에 대해 생각했다. 나루토는 그저 한 줄짜리 유언장을 읽고 또 읽을 뿐이었다. 익숙한, 하지만 벌써 그리워진 필체를 새기려고 하듯 반복해서 되새겼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나루토는 종이를 곱게 적어 품에 간직하며, 시카마루에게 말했다.



“시카마루, 네가 해줄 일이 있어...”



그 날은 하타케 카카시가 죽은 날이었다.







2.

“혹시 종이랑 펜이 있을까요?”



텐조는 데스크의 간호사에게 물었다. 그녀는 서랍을 뒤져 깨끗한 종이 몇 장과 쓰지 않은 펜을 건넸다. 텐조는 감사하다며 간단하게 인사한 후, 다시 한적한 복도를 걸어 병실 문 앞에 섰다. 환자 정보조차 적히지 않은 그곳은, 마치 안에 사람이 없는 양 조용했다. 텐조는 그 사실이 마치 앞으로의 미래를 예견하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명이라도 좋으니 이 병실에 누가 있다고 이름표라도 달아놓자는 의견은, 번번히 묵살되었다. 텐조는 아무도 없는 빈 병실처럼 꾸며진 그곳에, 결국 아무도 없게 될까봐 무섭고 두려웠다. 그리고 종이와 펜을 달라던 떨리는 목소리에 차라리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텐조는 그가 암부 때부터 알고 있는 오랜 후배를 시켜 얼마 전 자신의 집을 정리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제가 가져다 준 종이와 펜이 무엇을 위한 용도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텐조는 긴 심호흡 끝에 눈을 감고 병실 문을 열었다. 죽음이 눈 앞에 있었다.



그 날은 하타케 카카시가 죽기 전 하루 전이었다.







1.

하타케 카카시는 저멀리 보이기 시작하는 자신의 호카게 석상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동시에, 이미 깨끗이 씻어버린 찐득한 핏자국이 제 오른손을 옥죄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기계적인 동작 끝에, 카카시는 호카게 건물 옥상에 착지했다. 그를 뒤따르던 암부들이 목례를 하곤 순식간에 사라지자 그는 혼자가 되었다. 그는 저릿해지기 시작한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쥔 채, 자신의 호카게 석상을 바라보았다. 제 얼굴 위로 핏물이 흐르는 환상을 보고 난 뒤에야 카카시는 눈을 감았다. 호흡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카카시는 제게 속삭이던 유언을 기억해냈다. 원망할 사람도, 기억해야 할 죽음도, 저를 지탱하던 신념들도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카카시는 생각했다.



누군가의 숨을 끊은 손이 저릿해오더라도 저를 원망해서는 안됐으며, 우치하 오비토의 죽음을 더 이상 기억해서는 안됐다. 저를 지탱하던 신념을 심어준 사람들은 어린 아들을 저버린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였고, 제 스승과 고향 사람들을 죽인 처참한 전범에 불과했다.



하타케 카카시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었으나, 그래서는 안됐다. 그는 빗물을 머금었던 나뭇잎의 무게를 기억했다.

그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카카시는 옥상으로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아마 유능한 제 보좌관이 제 걱정에 밤새 집무실을 지키다, 암부의 보고에 자신을 찾아오고 있는 것일 터였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시카마루의 모습에 카카시는 머리가 띵해져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며칠 새 많은 고뇌를 감당한 머리는 적당히 애둘러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다. 카카시는 문득 제 보좌관이 제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비상한 머리를 갖고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시카마루.”

“오셨어요.”

“부탁이 있어.”

“네, 말씀하세요.”

“나중에 내가 죽거든, 지금 말하는 장소에서 나를 태워줘.”



그것이 하타케 카카시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카카시는 떠오르기 시작한 아침 해를 보았다.



그 날은 우치하 오비토가 죽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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